희미해지는 삶 앞에서 [조남대의 은퇴일기(74)]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5.06.04 14:01  수정 2025.06.04 14:01

자연이 연둣빛으로 물들어가는 사월이 가장 예쁠 때지만 한순간이다. 짙푸른 녹음이 붉고 노란 단풍으로 물들면 그 또한 얼마나 환상적인가. 이제 인생에 있어 절정의 계절을 맞았는데 고운 색깔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아 아쉽지만 어쩌랴. 세월의 흐름에 집착하는 것만큼 덧없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시력검사하는 안경과 시력표 ⓒ

얼마 전부터 안경 너머 세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먼지가 묻었나 하여 닦아봐도 마찬가지다. 안경을 맞춘 지 꽤 되었으니 도수가 맞지 않나, 글을 쓴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더니 눈이 나빠졌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눈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라서 운동이나 집 안에서 일상 생활할 때는 끼지 않는다. 다만 글을 읽거나 컴퓨터 작업을 할 때만 초점이 흐려지는 눈을 위해 다초점 안경을 쓸 뿐이다. 썼다 벗었다 해서 더 나빠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데. 눈을 소홀히 할 수 없지 않은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흐려지면 마음마저 어두워질 수 있을 것이다.


안과에서 눈을 검사하는 각종 기구 ⓒ

걱정되어 예전에 들렸던 동네 안과를 찾았다. 시력검사, 녹내장. 백내장 검사까지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웃으며 녹내장은 없고, 백내장 증세는 조금 있지만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여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안경 도수가 맞지 않아 흐릿해 보였던 것일 뿐 병적인 증세는 아니란다. 새로 안경을 맞출 수도 있지만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테니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그대로 써도 무방하다고 한다. 병원을 나서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난다. 별것 아닌 일에도 마음이 움츠러들고 괜스레 민감해져 가는 자신이 안쓰럽다. 기계도 오래 사용하다 보면 고장이 나듯이 눈도 흐릿해질 때가 된 것인가. 좀 더 대범하게, 너그럽게 살아가자고 다짐한다.


청력을 검사하는 이비인후과 ⓒ

2년 전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청력이 조금 떨어졌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불편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지난해 검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고음에서 한쪽 귀가 어두워지고 있다고. 돌아보니 성당 미사 때 뒷자리에 앉으면 신부님의 말씀이 자주 희미하게 들렸다. 서재에서 책을 볼 때 부엌에서 이야기하는 아내의 목소리도 아스라이 들렸다. 어머니도 팔순을 넘기신 뒤로 귀가 닫히기 시작하여 결국 보청기를 맞추셨다. 그러나 낯선 소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내 서랍 속에 넣어 두셨다. 그 뒤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잘 듣지 못하셨고 때로는 엉뚱한 말씀으로 우리를 웃게도 하셨다. 모전자전인가. 어머니 연세 되려면 한참 남았는데 내 귀도 어머니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청력 검사하는 기구 ⓒ

단순히 노화로 인한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 때문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귓속검사, 청력검사, 단어 듣고 따라 말하기 등의 검사를 받았다. 문득 입사 신체검사 때 혹시 탈락할까 조마조마하며 긴장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다행히 청력이 다소 약해지긴 했지만, 보청기의 손길을 빌려야 할 정도는 아니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씁쓸한 마음은 감출 수 없다. 눈이 희미해진 것도 모자라 귀마저 흐릿해지고 있다니. 흔히들 나이는 단순히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을 위로하기 위한 주문일 뿐, 몸은 냉정하게 숫자를 따라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젊었을 때는 나는 예외일 거라, 나만은 세월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거라 믿었지만 진시황도 피하지 못한 노화의 물살을 어찌 거스를 수 있으랴.

청력 검사한 결과지 ⓒ

머리도 어느새 희미해지고 있다. 검은 머리칼이 흰 서리가 내린 들판처럼 변해가는 줄만 알았더니 머릿속도 마찬가지다. 금방 떠올랐던 단어가 아지랑이처럼 사라진다. 잠자리에 들 때 좋은 글의 소재가 생각나거나 멋진 제목이 떠오르면 ‘내일 아침에 써야지’하고 일어나면 머릿속은 하얀 백지장이다. 밤 사이 누군가 몰래 지우개로 싹 지운 것처럼. 안타깝고 후회가 막심하다. 아침마다 챙겨 먹던 영양제조차 먹었는지 가물가물할 때가 있다. 예전엔 친구들이나 자주 가던 식당 이름이 혀끝에서 줄줄 흘러나왔는데 이제는 까마득하게 숨어버렸다. 얼마 전 경주 갔을 때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대기 줄이 길어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기다렸건만, 차례가 지났는데도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 계산대에 물었더니 ‘전화했는데 받지 않았다’라며 명부를 보여준다. 들여다보니 내 번호와 아내 번호가 뒤섞여 적혀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하며 한동안 먹먹히 앉아 있었다.

머리칼이 희어지고 기억력이 떨어진 나이드신 분의 모습 ⓒ

육십 대 이후에는 전두엽 기능 저하로 인지 속도와 단기 기억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고 뇌과학자는 말한다. 특히 육십오 세 이후에는 이름, 단어, 장소 같은 기억이 확연히 감퇴한다고 주의를 준다. 이를 조금이라도 만회해 보려고 책상 위에 메모 노트를 두었다. 글감, 해야 할 일, 스쳐 가는 생각을 적어둔다. 자동차 안에서나 길을 걷다 불현듯 떠오를 때는 핸드폰 메모장에 담아두는 등 안간힘을 써 본다. 그러나 “잊어버린다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과거의 아픈 일마저 기억하고 있다면 정상적인 삶이 어려울 것이다. 노화에 따른 현상이니 겸손하게 하루하루를 알뜰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기억력과 기력이 떨어져 힘겹게 걸어가시는 노인 ⓒ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가는 할머니나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할아버지를 볼 때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고 몸이 약해지는 일은 누구도 회피할 수 없고 슬퍼한들 어쩌겠는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젊음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보다, 나이 듦을 품위 있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낫다”라고 설파했다. 나 역시 흐려지는 눈으로 세상의 빛을 바라보고, 희미해지는 귀로 삶의 소리를 새롭게 들으며, 사라지는 기억의 빈자리에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채워가야 하지 않을까. 피해 갈 수 없는 세월 속에서 어떻게 순응하며 살아내느냐 하는 것은 내 몫이지 싶다.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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