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적 설정으로 흥미를 유발하되, 디테일한 에피소드로 공감을 파고드는 판타지 장르가 TV 드라마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큰 스케일로 ‘보는’ 맛을 극대화한 판타지 영화,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표 장르물보다 장르적 쾌감은 떨어질 수 있으나, 그만큼 큰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이 장점이다.
영매의 운명을 거부하는 무녀 여리(김지연 분)와 여리의 첫사랑 윤갑(육성재 분)의 몸에 갇힌 이무기 강철이가 왕가에 원한을 품은 팔척귀에 맞닥뜨리며 몸과 혼이 꼬이는 SBS ‘귀궁’은 메인 캐릭터은 팔척귀는 물론, 수살귀와 야광귀, 수귀 등 각각의 귀물 캐릭터와 이들의 사연으로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전통설화에 등장하는 한국적인 귀신을 통해 여느 오컬트 드라마와 차별화된 재미를 구현하는 한편, 한(恨)의 정서를 바탕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파고든 것이 ‘귀궁’의 강점이었다. 한 예로 극 중 수살귀 옥임(송수이 분)은 망나니 영인대군(김선빈 분)에게 몹쓸 짓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연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오히려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한을 풀었었다.
이 같은 장점을 바탕으로 ‘귀궁’은 9~1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일본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인 Lemino(NTT Docomo)에서 아시아 장르 최고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해외 시청자들의 사랑도 받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윤성식 감독은 “귀신을 공포가 아닌 공감의 대상으로 풀어낸 한국 특유의 한이라는 정서가 인류 보편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귀궁’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그 비결로 꼽았다.
현재 방송 중인 MBC 금토드라마 ‘노무사 노무진’은 귀신 보는 노무사 노무진(정경호 분)을 통해 억울하게 죽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철근에 깔려 죽을 위기에 처한 무진 앞에 보살(탕준상 분)이 등장, 죽은 노동자 유령들을 성불시키면 목숨을 살려준다는 제안을 하며 본격적으로 ‘유령보는 노무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이를 통해 흥미를 고조시키는 한편, 공장 산재사고로 죽은 현장실습생,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간호사의 이야기 등을 차근차근 풀어가며 ‘노동 현실’을 조명 중이다.
이 외에도 지난달 25일 종영한 JTBC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80세의 모습으로 천국에 도착한 해숙이 젊어진 남편 낙준과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판타지적 재미와 삶, 인간에 대한 의미를 함께 담아내며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이 가족, 반려동물과의 재회가 주는 뭉클함, 그리고 삶과 죽음, 인연에 대한 메시지를 흥미롭게 전달한 것처럼 판타지적 설정을 통해 ‘현실’을 포착하는 작품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또한 마지막 회차에서는 8%의 시청률을 넘겼으며, ‘노무사 노무진’은 4%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호평을 받는 등 드라마적 재미를 배가하면서도, ‘공감대’를 놓치지 않으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각 에피소드를 섬세하게 풀어내며 ‘탄탄함’을 갖췄고, 이에 그 어떤 판타지 드라마보다 긴 여운을 남기는 등 영리하게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특히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해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지 않아도 이 같은 강점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방송사들의 ‘긍정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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